경북 연수 후기

2024. 9. 20. 10:19별주머니

일기장을 뒤지다 발견한 글.

이 분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살고싶게 만든다. 다시 보고 싶은 분.

2021년 YBM 대구 연수.

 

기대하지 않았던 집합 연수에서 장은경 선생님을 만나고.

 

나는 내가 우리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교직 생활의 굳은 살을 만들어가는 지난 시간동안 나의 원래 생긴 모양을 많이 잃고, 또 나도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아 회의적인 사람이 되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영어는 나에게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이었다. 네 번의 대학 입시에서의 실패, 윤리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비윤리성에 대한 실망감 그런 모든것들로부터 영어는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에게 영어를 배운 많은 아이들도 영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터득하고 각자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누구보다 강한 소명이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시절에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서 샤워를 하면서 임용고시 면접에서 '너는 왜 영어 선생이 되려고 하니?'라고 물어보면 '제가 심은 작은 씨앗이 커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라고 답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과 오지랖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어렵고 복잡한 일을 내 책상 위에 올렸고 서른살에 3학년 부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기술이 난무하는 입시판 위를 달려오다보니 학교의 모든 일을 입시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똑같은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미약한 명성치도 서울대 몇명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한 권력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어서 나는 이 직업을 그만둘 때까지 고3 부장을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렇다면 진짜 기술자가 되어서 내 진로부터 다시 고민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직업을 때려치울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하루하루 재미가 없던 중 연수에 들어왔다.

 

3일 내내 들었던 생각은 "왜?"였다. 첫 번째는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당연한 일을 하는것일까? 돈을 더 주는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인가? 자존감 때문인가? 설마 아이들을 위해서일까? 아직 그런 교사가 있다는건가?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고? 그런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다고? 라는 생각만으로도 나에게는 무척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집사람도 그 동안 그 어떤 연수를 다녀왔을 때 보다 기분이 좋아보인다고 했다. 진짜들이 이 세상에 아직 살고 있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영어교사로서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심지어 무리를 지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두 번째 왜는 여기 강사로 오는 대-단한 사람들은 왜 장은경 수석님을 두목으로 모시는가? 였다. 훌륭한 인품 때문인가 훌륭한 실력때문인가 도대체 무엇때문이 이 사람은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알아보는 훌륭훌륭한 사람인가? 라는 의문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교사가 기댈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구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교사들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벗고, 앞으로의 삶에서는 선배교사들한테 큰 소리만 칠 것이 아니라, 후배들이 기댈 수 있는 배울것이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진로진학으로 전직하겠다는 나의 굳은 다짐에는 변화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친 단단한 장벽에 장은경 수석님이 균열을 냈다는 것이다. 수석님도 나의 가슴에 균열을 낸것처럼 나도 아이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교사로 한 걸음 정도 돌아가 봐야겠다.

 

메타버스를 배웠지만 사실 교육철학을 배웠다.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 또 만날 수 있도록 나도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