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6. 07:28ㆍ일상 수업 이야기
새 단원을 시작하면서 모둠수업을 그만두었다. 일반적으로 모둠학습은 성적별 상중하 학생들을 이질적으로 모둠을 편성하여 튜터, 이끔이를 모둠내에 하나씩 두고 서로 협력해서 공동으로 과업을 완수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모든 학생이 학습의지가 있고 학생간 수준차가 그닥 크지 않은 경우는 괜찮은데, 교실 내 격차가 극과 극인 경우 문제가 많다.
1. 이끔이의 역량과 성향에 따라 편차가 크고, 이끔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즉, 그냥 베끼기만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점수는 높지만 리더십이 부족한 학생이 이끔이면 모둠내 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효과 제로.
2. 가르치는게 최고의 학습법이라고는 하지만 이끔이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도 도전적이지 않은 과업을 완수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특히 내가 제작한 자료가 아니라 교과서를 수업할 때는 이미 학원에서 다 배워와서 모르는 것, 알고싶은 것이 없으니 전혀 흥미롭지 않다.
3. 짧은 시간에 진도를 커버해야 하니 읽기과업의 수준을 하향평준화 해야한다. 이것 저것 해볼 시간이 없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이번에는 탐구 그룹과 이해 그룹으로 나누고 희망하는 쪽을 선택하는 방식을 시도해봤다.
[이해 그룹 활동]
선생님의 꼼꼼한 설명이 좋은 학생들은 나와 함께 동그랗게 둘러 앉아 아주 쉽게 제작된 라바라(라인 by 라인 - 한 줄 해석) 학습지를 완성한다. 이 그룹의 학생들은 학습 전략을 사용해본 적 없고 -전략은 커녕 펜과 책, 워크싯도 안가져오기 일쑤 - 기초가 부족하고, 학업의지도 없는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차근차근 안내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가져가려면 반드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보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학습지에 자기만의 낙서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주요 문장은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 어려운 단어는 동그라미, 핵심 어법은 밑줄, 그리고 중간중간 낙서같은 그림으로 시각화 하도록 하고, 각 페이지마다 도표, 타임라인, TF 퀴즈 등으로 간단한 복습을 하게 했다.
동그랗게 둘러 앉으니 일단 딴짓을 못한다. 엎어져 자는 것도 좀 민망하다. 내가 돌아보며 한명 한명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모니터링 하기도 매우 쉽다.
현재완료 수동태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문장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 어떻게 학습하게 할까 하다가 단어를 배열하게 하려고 단어카드를 만들었다. 둘이 한 세트를 하게 하려니 10 세트가 필요. 칼질 하다 어깨 빠지는 줄.
단순한 문장 배열 활동도 학습지나 슬라이드가 아니라 실물 단어카드로 줄 때 훨씬 몰입한다.
#Quizziz 같은 온라인 도구도 좋지만 역시 노작활동이 기억에 제일 잘 남는듯.
[탐구그룹]
교과서를 미리 학원에서 배워온 학생들,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학생들은 교실 뒤쪽 탐구그룹으로 간다. 네 가지 과업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되 두명씩 짝을 지어주었다. 둘이 문서 하나를 공유해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이해 그룹의 진도가 끝나면 교실 앞에 나와 전체 학생들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과업이 네 가지라 8명쯤 나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희망자를 받으니 반마다 거의 8명 내외가 나와주었다. 선택 과업은 네가지. 일단 이 학생들은 신나게 각자 작업을 하면서 중간중간 진행상황을 점검.
드디어 오늘 이해그룹의 진도가 다 끝났다. 기말고사 전 자습 대신 탐구그룹의 주제별 발표와 Review. 탐구그룹의 발표 무대 시작! 호랑이를 구하기 위해 전기를 아껴쓰자는 참 재미없는 본문이었는데, 이렇게 재미있어지다니!
[ Critical Thinking Question Maker ]
교과서 지문에 대해 딴지걸고 잘못된 정보, 부족한 정보가 없는지 조사해보고, 배운 지식은 어디다 활용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라 했더니 호랑이 개체수 감소에 대한 교과서의 정보가 틀린 부분을 찾아내서 발표했다.
내 의도에 딱 맞는 천우의 발표! 교과서에서는 전기를 끄고 친환경 팜유 제품을 사용해서 호랑이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내용인데, 그 내용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을 뿐 아니라 , 이에 대한 대안까지 훌륭하고 설득력있게 제시했다. 이런 학생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발표.
[ Comprehension Quiz Maker ]
문제 시작 전에 목표점수까지 적어보게 한 치밀함에 감동! 노트북을 2인당 한개씩만 주고 서로 상의해가며 풀라고 했더니 펜과 책을 단 한번도 가져온 적이 없는 놀돌이 님들까지 엄청 집중해서 푼다. 실시간으로 학생들 오답이 많이 나온 선지를 분석해서 부가설명하고 체감 난이도까지 확인. 구글 퀴즈로 제작하게 하길 잘했다. 어쩜 이렇게 도구활용을 잘할까?
- Language Use 설명팀은 반 친구들 사진을 넣어 예문을 제작하는 센스. 어려운 문법 설명이 지루할 틈이 없어요.
- Background Knowledge Enhancer : 가르쳐주지도 않은 미리캔버스에서 시선을 확 잡아끄는 템플릿을 찾아내서 모두를 집중시킴. 둘이 마치 토크쇼를 진행하듯 주거나 받거니 대화를 나누어가며 어찌나 재미있게 진행을 하는지, 이런 발표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어쩔뻔했나!
* 탐구그룹은 아닌데, 3월초 설문에서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고 응답했던 학생이 갑자기 기억나서 단원 전체의 제목과 본문 제목 두 가지를 그림으로 간단히 표현해보라고 했다. 졸라맨으로 대충 그리라고 매직이랑 종이만 휙 주었는데, We Are All Connected 라는 제목을 초목-호랑이-인간까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게 표현해서 입이 떡!
또 다른 그림에는 바이올린에 네개의 현이 있는데, 이 중 하나만 끊어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종은 다같이 소중하다는 메세지를 전했다. 이 역시 입이 떡!
Turn off the light and save a tiger 라는 본문 제목은 호랑이를 겨누고 있는 과녁이 불을 끄면 맞출 수 없게 되니 불을 끄라고 표현한 거라 했다. 교과서 내용이 예술 작품이 되었다.
[풀지 못한 과제]
- 기기를 가지고 각자 문제를 풀게 할 때 해야할 과업은 안하고 게임을 하거나 딴짓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그런데 이 친구들이 기기가 없을 때는 수업에 집중하며 배우려고 하는가 생각해보면 역시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배우고 싶은걸 가르치고 있는가가 아닐지?
- 내가 나의 페이스대로 진행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해야 할 과업을 주었을 때 학생들마다 속도가 너무 다른 것이 늘 어렵다. 일찍 끝내고 노는 학생들, 하나 하나 완수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학생들. 추가 선택 과업을 주기도 하지만 매 활동마다 이걸 준비하는건 너무 중노동.
- 청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알고 좋은 시각 자료와 선명한 프리젠테이션으로 발표 준비를 잘한 학생들,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알고 설명도 잘하는 학생들이 발표를 하면 발표자나 청중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만, 전달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나 준비가 부실한 경우 듣는 모두의 시간이 낭비된다. 하지만 잘 못하는 학생들도 앞에서 발표를 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경험을 해봐야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번에 이해확인 문제를 만들겠다고 한 성O이는 중간고사 지필점수가 30점대였다. 몇번이나 확인했는데 잘할 수 있다고 했고, 그 아이의 성실성을 믿었으나 앞에 나와서는 설명도 잘 못하고 나오는 질문에 전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모두의 시간을 속절없이 낭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 아이에게 이 경험이 꼭 필요한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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